이길여 경원대 총장 -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대담
`지금 교육시스템은 영재·범재 모두 죽인다` 각국 청소년들의 과학 재능을 겨루는 ''국제 청소년 물리 토너먼트(IYPT) 2007''이 5~11일 경기도 성남 경원대에서 열린다. 이 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은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 대회를 주최하고 장소를 제공한 이길여 경원대 총장이 한국의 과학 및 영재 교육의 현실과 미래를 짚어봤다. 본지 박방주 과학전문기자가 사회를 봤다.





◆국제 청소년 물리 토너먼트에 출제되는 문제의 예

.물을 끓여 나오는 수증기로 소금물을 섭씨 100도 이상으로 끓여라.

.연못을 헤엄치는 오리 뒤로 나타나는 물결의 파동이 오리의 속력과 상관없이 일정한데 왜 그럴까.

.짧은 나무막대의 한쪽 끝을 책상 가장자리에 걸쳐놓고 바깥으로 나온 끝을 쳐서 날려보낸다. 나무막대가 날아간 거리에 관계된 변수를 조사하고, 가장 멀리 날아갈 조건을 구하라.

.물방울 두 개를 서로 충돌시킬 때 산란된 물방울의 형태는 어떠한가.

.날개 달린 씨앗이 떨어질 때 벌어지는 운동을 조사하라.

.뜨거운 물을 싱크대에 쏟았을 때 나는 소리는 찬물을 쏟았을 때 나는 소리와 다르다. 이 현상을 조사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라.

.샴푸나 꿀처럼 점성 있는 액체가 약간 들어 있는 병을 얼마나 기울일 때 액체를 가장 빨리 쏟을 수 있는가.

▶사회=IYPT가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어떤 의미인가.

▶이길여 총장(이)=과학 영재들에게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과학이 우리 미래를 먹여 살린다는 명제는 대통령부터 학부모까지 다 안다. 그러나 말만 그렇지 과학 발전을 뒷받침할 과학 영재를 키우고 육성하는 제도는 제대로 안 돼 있다. 이번 대회는 세계 과학 영재들의 수준을 한국에 알리고, 과학을 좋아하는 국내 청소년을 찾고 키우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오세정 학장(오)=국제대회를 유치하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나 능력이 안 되면 그럴 수 없다. IYPT를 운영하는 국제기구에서 현지 실사를 해 결정했다. 여기에다 한국 팀은 2002년 뒤늦게 이 대회에 참가했으나 우승.준우승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낸 것도 대회 유치에 한몫했다. 이 대회는 5명이 한 팀을 이뤄 해답 없는 문제를 풀어본 뒤 토의하고 상대 팀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연구하는 과정이다.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팀워크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창의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한국의 과학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회는 영어로 진행돼 국내 예선도 영어로 한다. 과학을 잘하지만 영어가 달려 출전하지 못하는 학생이 꽤 있다. 우리말로 진행하는 별도 대회를 만드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사회=올림피아드는 입시 때 가점을 주는데 토너먼트는 가점이 없다고 들었다.

▶오=입시제도가 경직돼 있기 때문이다. 토너먼트의 한국팀 선수로 나선 학생들이 미국 아이비리그에 가면 입시 사정관이 점수를 준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수능과 내신을 제외하면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다. 입시제도가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올림피아드만 가점 대상이고 나머지는 안 된다는 식은 너무 획일적이다.

▶사회=우리 과학 영재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오=영재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크지만 제대로 되고 있는지 잘 따져 봐야 한다. 대부분의 영재교육이 (입시의) 선행학습 같은 성격으로 변질되고 있다. 창의성을 키워주고 나름대로 소화하고 있는지 도와줘야 하는데 과학고 입시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 영재학교 나오면 과학고에 들어갈 수 있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부모들이 과열 양상을 보인다. 객관적인 평가 수치는 선행학습밖에 없기 때문에 이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어렸을 적 영재학교에 들어갔다고 머리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소질을 찾아내야 한다. 대학에서 인성을 키워주면서 세계적인 학자를 배출하면 된다. 영재를 뽑아 집중적으로 대학까지 교육시키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미국 LPGA에서 한국 여성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집중 교육을 받은 선수가 많기 때문이다. 영재와 범재가 가는 길을 분리해야 한다. 현 교육 시스템으론 그게 힘들다. 러시아의 경우 과학위성을 쏘아 올릴 때부터 심도 있는 영재교육을 했다. 고교에서부터 대학.연구소가 일관 시스템을 갖췄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작돼 지금까지 남아 있다. 효율성 면에서 앞서는 게 사실이다. 독일의 경우 지역마다 연구센터를 갖춰 실험을 하고 싶은 학생들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와이스만연구소가 주축이 돼 예술과 과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오=어릴 때 영재성을 드러낸 이들 중에 30~40대에 이르러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성 부족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영재학회에서 발표된 적이 있다. 더불어 연구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보면 과학고 출신의 성적이 처음에는 좋지만 4년 뒤 이들을 능가하는 일반고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자기들끼리만 놀게 되면 영재의 잠재력을 충분히 키우기 힘들다.

▶이=그래서 검증된 영재들에 대한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교과목을 가르쳐야 한다. 영재들을 가둬놓고 교육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특별하게 가르쳐야 한다. 한데 섞는 평준화로는 미래가 없다. 특수한 학생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미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과학 좋아하는 아이들을 따로 모아야 한다. 골치 아픈 물리를 왜 하겠나. 자기가 좋으니 하는 것이다. 올림피아드대회 같은 과학경진대회는 얼마나 많이 부각되는지가 중요하다. 박세리의 골프 대회 우승이 주목받지 못했다면 골프가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10~20년 뒤 우리를 먹여 살릴 게 무엇인지 호기심을 발동시켜야 한다. 교육적으로, 정책적으로 도와야 한다. 새싹의 풀(pool)이 많으면 몇 명만 건져도 성공이다.

▶오=고교 시절 과학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면 자신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학 전공을 과학으로 정하는 경우도 많다. 시골 고교에서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고 있다가 국제대회에서 입상하면 힘을 얻는다. 대학 강단에 있으면서 이공계 학생들의 과학적 소양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자주 듣는 게 사실이다. 일반고 학생들의 과학 능력을 공교육이 커버해 줘야 하는데 교과 과정이 걸림돌이다. 현행 입시제도에서 과학 과목을 택해 수능을 보면 점수가 떨어지게 돼 있다. 미.적분 공부도 안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물리를 선택하니까 좀 떨어지는 학생은 물리를 안 한다. 제도적으로 과학의 확산이 방해를 받는다. 고교에서 물리 공부를 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교육에 적응하려면 무척 힘들기 때문에 최근 따로 대학 내 준비과정을 마련한 것이다. 미 스탠퍼드대에도 이처럼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을 위한 과정이 따로 있다.

▶사회=과학교육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면 밥그릇 논쟁으로 비춰지기 쉽다. 어디에서 과학교육 확대의 당위성을 찾을 수 있을까.

▶오=밥그릇 싸움으로 치부하면 해결점을 찾을 수 없다. 21세기에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지식이 필요할지 근본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하는데 3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지식기반 사회에 걸맞은 준비 과정은 매우 다르다고 본다. 과학적인 소양이 무척 필요하다. 유전자 조작과 원자력 발전을 알아야 정책을 세우고 사업도 할 수 있다. 그런 고민이 너무 없다. 이공계 대학 교육도 이제 한 단계 넘어설 시점이다. 한국의 빌 게이츠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성을 키워주는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볼트와 너트의 수치를 외우는 암기가 어느 정도 중요했다. 창의성 교육이란 답이 있는 문제를 꼬아 쉽게 풀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 재편성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 나름대로 판단해 연구하게 하고 토의하도록 해야 한다. 정답을 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회=자립형 사립고와 국제학교 같은 다양한 학제가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다양성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우열은 분명 존재한다. 형제도 다르게 자라는데 어떻게 평준화 교육이 가능한가. 21세기는 머리로 먹고사는 시대다. 지금도 사실 늦었다. 각자의 자아실현, 즉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맞춤 교육이 필요하다. 그게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일이다. 영재교육도 그런 방향이다. 영재를 어디에 써먹을지 따지기 전에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도록 해 그 결과를 사회 발전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부모들은 자식이 영재학교에 들어가면 영원한 영재로 착각한다. 초등학교 때 수학에 흥미를 보이다가 나중에 흥미가 떨어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영재학교를 자유롭게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부모들은 그 경로를 따라 대학까지 가길 원한다. 진화론을 보면 자연이 하는 일은 여러 변종을 만들어 놓고 그중에 하나를 저절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공교육은 너무나 획일적이어서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고 같은 변종을 만든 것이다. 정부의 관심은 대학입시에 수능과 내신을 몇 %씩 반영하라는 획일적인 지시뿐이다. 국민의 복잡다양한 의식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정부의 생각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의 앞날을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과학자가 될 사람을 추려내고 공부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리=심재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오세정 학장=경기고를 수석 졸업(1971년)하고, 서울대 전체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고체물리학 분야로 박사 학위를 받고 84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04년 이 대학 자연과학대학장을 맡았다.

◆국제 청소년 물리 토너먼트(IYPT)=1979년 소련 모스크바대에서 시작돼 올해로 20회째를 맞는다. 경원대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미국.중국.브라질.나이지리아 등 26개국에서 300여 명이 참가한다. 문제풀이 식의 올림피아드 대회와 진행 방식이 다르다. 각국 고교생 5명이 한 팀을 이룬다. 미리 주어진 17가지 자연현상에 대해 몇 달간 탐구한 결과를 영어로 발표하고 상대 팀과 토론해 순위를 가린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명쾌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반박해야 좋은 점수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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