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새교육감 한국계 미셸 이

“그들의 기 살려줘야”

연공서열 시스템선 우수교사 있을 수 없어…
공교육 무너지게 하는 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범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지난 40여년간 엉망이라는 미 공(公)교육 시스템에 대한 평가에서도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연간 10억 달러의 예산으로 학생 1인당 경비는 미국 100개 교육구에서 세 번째로 높지만, 미 11개 대도시 학생 중 영어와 수학 성적은 최하위다. 이런 곳에 지난 12일 한국계인 미셸 이(Rhee·한국명 이양희·37)씨가 새 교육감으로 임명됐다. 학생의 대부분이 흑인인 이곳에서 첫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교육감을 맡는다는 것은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6일 콜로라도주 덴버에 있는 부친 이상열(李相悅·68) 박사(재활의학과)의 집에서 만난 이 교육감은 “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동안 미국 공립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봐 왔고, 학생들의 학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 교육감은 1997년부터 ‘뉴 티처 프로젝트(The New Teacher Project·TNTP)’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미 22개 주 200여 교육구에 2만명의 우수 교사들을 공급해 왔다. TNTP는 각 교육구와 제휴를 맺고, 미국의 엘리트 대학 졸업자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젊은이들 중에서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사로서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선발해 교사로 1년간 일하게 한다. 이후 교육구와 학교측이 TNTP 교사의 교육 서비스에 만족하면, 일반적인 교원 채용 과정과는 별도의 코스로 이 교사를 채용하게 된다.

이 교육감이 이끌어 온 TNTP는 워싱턴 DC와도 지난 3년간 교사 공급 프로그램을 맺어 왔고, 그 자신도 미 동부의 아비리 리그 중 하나인 코넬대(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워싱턴 DC의 한 공립학교에서 3년간 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결국 그의 자신감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 이인자(李仁子·64)씨는 “좋은 학교 나온 딸이 좋은 직장 갖기를 바랐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이젠 생각이 바뀌었지만, 이제 딸이 또 워싱턴 DC로 간다니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에이드리언 펜티(Fenty) DC 시장의 교육감 임명 제의를 처음엔 거절하다가 맡기로 했는데.

“만인은 교육 앞에 평등하다. 공교육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범죄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40여년간 ‘바닥’인 워싱턴 DC 교육구의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도심 빈민지역의 학교를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교사를 많이 확보하고 그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면 아이들 성적은 올라간다. 좋은 건물, 첨단 기자재를 갖춰도 교사의 질이 떨어지면 소용없다. 교육에선 훌륭한 교사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훌륭한 교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뭔가.

“실력 있고 휼륭한 교사는 엉터리 교육청에는 오지 않는다. 그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자부심, 미래의 꿈나무를 키우는 특권을 소중히 생각하며 가르친다. 그들의 기를 살려줘야 한다. 각종 행정적 장애물을 제거하고, 아이들에게 열정을 쏟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내 일이다.”

―DC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결과에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이제부턴 교직원·학부모·학생 모두 맡은 소임을 책임지고 해야 한다. 또 좋은 학업 성과를 내는 교사를 우대하겠다. 교사면 누구나 똑같이 월급 받고 똑같이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는 시스템에선 우수한 교사가 붙어 있을 리가 없다.”

―예산 1700만 달러의 비영리 교육단체(TNTP)를 운영하는 것과 예산 10억 달러의 교육구를 책임지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 않나.

“TNTP가 뉴욕시에 보낸 교사 중 매년 2000명이 신규 교사로 채용된다. 뉴욕시 전체 8만명의 교사 중 1만명이 TNTP 출신이다. 지난 5년간 전국적으로는 매년 4만5000여명을 뽑아 전국 교육구에 임용시켰다. DC 교사는 4000여명에 불과하다. TNTP는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선 교사의 연공서열을 없앴고, 교장이 노조 소속 교사를 반드시 고용할 필요가 없도록 법을 바꿨다. 뉴욕주·캘리포니아주 의회와 일하는 것보다 복잡한 일이 있을까. 아무도 노조를 상대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특정 교육구를 선정해 교사의 분포도와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비교 분석한 데이터를 제시했다. 고참 교사가 많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는 현실을 정확히 자료로 제시하자, 아무도 계약조건의 변화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두 딸을 워싱턴 DC의 흑인 공립학교에 보낼 생각인가(이 교육감은 8세 된 ‘스타’와 5세 된 ‘올리비아’라는 두 딸을 두고 있다.)

“DC의 교육감이니까 당연히 DC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 거주지역에서 살면서 애들도 흑인 학교에 보낼 생각이다. 미국은 다인종 다문화 사회다. 애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흑인 빈민 지역에 사는 것이 두렵지 않나.

“대학 졸업 후, 볼티모어시의 흑인 빈민 지역 학교에서 가르칠 때 학부모를 만나려고 밤늦게 어두컴컴한 동네를 돌아다닌 적이 많았다. 애들 성적을 올리려면 학부모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내 충정을 이해해 준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줬다. 마음이 통하면 위험할 게 없다.”

―그때 애들 성적을 2년 만에 전국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한데 비결은 뭐였나.

“내가 맡은 초등학교 2학년 애들에게 목표를 설정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매일 두 시간 분량의 숙제를 내주고, 토요일에도 애들을 가르쳤다. 처음엔 학부모들이 반신반의했지만, 차츰 이해했다. 가난한 학부모들이지만 자식을 대학에 보내겠다는 데 대해서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었다.”

―원래 그렇게 교육에 관심이 많았나.

“작고하신 할아버지도 교육자였고, 고모 등 주변 친인척 가운데 선생님들이 많이 있다. 아버지는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고 늘 말씀하셨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어가 능숙한데.

“1981년부터 2년 동안 한국에서 청담초등학교를 다녔다. 어머니가 한국어 배우라고 보내셨다. 두 딸도 한국 아이라는 생각에 성(性)을 이(Rhee)씨로 했다(두 딸의 이름은 스타 호프만 리, 올리비아 호프만 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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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이 교육감은…


1969년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상열(李相悅) 박사는 서울대 의대 인턴 중 1965년 도미, 미시간 의대를 졸업하고 오하이오 톨리도에서 30여년간 개업의로 활동하다 최근 콜로라도 덴버 교외로 은퇴했다. 할아버지는 서울시 교육위원을 지냈던 고(故) 이혜우(李惠雨)씨.

이씨는 1992년 코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볼티모어 흑인 빈민가에서 3년간 교사로 자원 봉사했다. 그는 당시 학생들의 학업 성적을 2년 만에 6배나 끌어 올려 화제를 모았다. 이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하고, 민간 교육단체인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에서 일했다가, 1997년 ‘뉴 티처 프로젝트(TNTP)’를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남편 케빈 호프먼씨 역시 이씨와 함께 교육운동을 해왔다. 오빠인 에릭(41·한국명 이수희)씨는 덴버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동생 브라이언(36·한국명 이철희)씨는 현재 한국에서 EBS TV 중학생 퀴즈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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