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코리아’도 ‘메이드 인 인디아’도 아니었다. ‘메이드 인 글로벌’이었다. 올 들어 인도 휴대폰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LG전자의 신제품(KG110) 얘기다. LG 브랜드로 팔리는 제품이지만 그 속을 해부(解剖)해보니 수많은 국적(國籍)의 부품들이 망라돼 있었다.

휴대폰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제품의 디자인은 서울의 LG전자 디자인연구소와 중국 옌타이(煙臺)의 LG전자 모바일 연구소에서 공동으로 진행했다. 핵심 부품인 플래시메모리(반도체)는 중국에 설립된 미·일 합작사인 스팬션에서, LCD(액정화면)는 대만(臺灣) 업체인 톱폴리에서 공급 받는다. 또 다른 핵심 부품인 칩셋(Chipset)은 미국 기업인 ADI에서 만들었다. 금형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 진완 차이나가, 사출은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 스타리온이 담당했고, 충전기와 포장 재료는 인도 업체인 디지콤이 맡고 있다. 이 부품들이 최종적으로 인도 서부 도시 푸네에 있는 LG전자 2공장에 집결, 완성된다. 이 밖에 일일이 밝힐 수 없는 부품들도 출신이 제 각각이다.

왜 이토록 복잡한 글로벌 분업(分業) 과정을 거칠까. ‘메이드 인 코리아’ 부품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넘쳐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제품을 조금이라도 싸고 좋게 만들기 위해 어디든 달려 가야 하는 글로벌 시장의 냉혹함이다.

한 달에 20만대씩 팔리는 KG110 휴대폰의 가격은 2300루피(약 4만8000원). 국내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저가(低價) 제품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게, 매달 600만명씩의 가입자가 늘고 있는 인도 시장은 6만원 이하의 값싼 휴대폰이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한다. 그나마 신제품의 가격대는 점점 내려가고 있으니 기업으로선 가격경쟁력 갖추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LG전자 인도법인 신문범 부사장은 “이렇게 해도 노키아(세계 1위 업체)보다 원가 경쟁력에서 밀려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비단 LG만의 일이 아니다. 삼성, 노키아 등 경쟁사는 물론, 자동차 등 다른 산업도 정도 차이일 뿐 사정은 같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게 있다. 우리 중소기업이다. 과연 ‘메이드 인 글로벌’의 일원이 될 만한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세계의 공장들은 앞다퉈 소비자가 있는 신흥시장으로 보따리를 싼다. 내수(內需)용 업체의 입지는 급속히 줄고,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노출되는 속도는 점점 가속이 붙는다. 더구나 지금 세상은 제조업만 글로벌 체제가 아니다.

국내 최대 할인점인 이마트를 보자. 글로벌 소싱(global sourcing) 전담 팀이 있다. 이 팀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은 물론,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까지 모두 2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물품을 찾아내 수입한다. 연간 2000억원이 넘는 규모이며, 올해는 갑절로 늘 전망이다. 무조건 싸다고만 구입하지 않는다. 비싸도 비싼 이유가 있으면 얼마든 구매한다. 문제는 경쟁력이다. 할인점마다 글로벌소싱 전담 팀은 이제 기본이다.

중소기업들이 산업 보호정책으로 버틸 수 있던 시대는 사라지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시대엔 국내 최고 경쟁력으로 성장했다면 ‘메이드 인 글로벌’ 시대엔 세계 1등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가혹해 보이는 현실이지만 별다른 대안이 보이지 않고, 그런 시대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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