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국가 개조 프로젝트 <2>

폐쇄적 평준화 교육으론 국제 경쟁력 못갖춰
경쟁체제 도입… 국제적 의사소통 능력 키워야
최재혁 기자 jhchoi@chosun.com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입력 : 2007.04.06 00:3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교육 부문은 ‘무풍지대’였다. 우리 정부는 전교조 등 좌파 진영의 반발을 의식해 협상 자체에 소극적이었고, 미국은 한국인 유학생들이 이미 자국에 넘쳐 나는 상황이라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양국 간의 협상에서 ‘교육’은 논의 대상조차 되질 못했다.

이를 놓고 “우리 교육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킬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많다. 교육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전 세계가 글로벌 인재의 양성을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어설픈 변화보다는 완전히 새로운 교육의 틀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우리 교육 분야를 개방형 체제로 바꿀 수 있는 대안(代案)으로 각종 교육 규제 철폐, 자율과 경쟁 체제의 실현, 국제화의 전면적 실시, 교사 경쟁체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교육부’(규제)를 없애라

교육부는 지난달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면서 특목고를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외국어고 등 특목고는 글로벌시대에 국제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려고 만든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율을 더 주기보다는 설립 목적에 어긋나는 운영이 발각되면 일반고로 전환해 버리겠다고 압박했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은평과 길음뉴타운에 자립형사립고 설립을 각각 추진 중이다. 미국의 명문 사립고처럼 글로벌 리더를 육성하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지만, 교육부는 부정적이다.

이는 자국의 교육 분야를 외부에 활짝 개방한 싱가포르와 대비된다. 1998년 싱가포르 정부의 ‘교육허브 전략’이 추진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의 명문대학이 싱가포르에 캠퍼스를 열었다. 그 결과 작년 초 기준 7만여 명의 외국유학생들이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여러 차례 외국대 분교 유치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실적은 한 건도 없다. 서울대 노경수 교수(행정학)는 “이제 학교 설립은 교육부가 아니라 부모와 학생의 선택, 즉 시장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며 “일정 기준만 통과하면 설립을 허용해야 하고, 그 학교가 망하느냐 마느냐는 어떤 교육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송자 전 연세대 총장은 “평준화는 개발시대에 필요한 제도였지만 21세기 지식경쟁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면서 “획일적이 아닌 다양한 학교를 정부가 나서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어 교육은 국제화의 토대

고려대의 ‘국제화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은 ‘글로벌 인재’에 요구되는 절대적인 자질로 ‘국제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들었다. 그는 “일본이 대국이지만 영어 구사능력에서 떨어지기 때문에 국제적인 리더십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학 교육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 전 총장은 또 유럽의 ‘에라스무스 플랜(Erasmus Plan)’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 학생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외국학생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국가 제도적으로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에라스무스 플랜은 유럽에 있는 학교 학생이 1년 동안 다른 나라, 다른 학교에서 교환수업을 받는 것이다. 노경수 교수도 “우리 인구의 최소 10%는 아주 능숙하게 외국어를 구사해야 한다”며 “이들은 국제경쟁의 최전선에서 뛰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초·중학교에서만큼은 정규 교과의 부담을 줄이고 특별활동의 비율을 늘려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서울대 조동성 교수(경영학)는 “세계최대 기업인 GE(제너럴일렉트릭)의 전 CEO 잭 웰치의 리더십에는 어렸을 때 럭비부 주장으로 활동했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며 “선진국들이 왜 학교에서의 클럽활동과 단체활동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경쟁으로 체질을 바꿔라

최근 국내에서는 대입(大入) 3불제(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를 폐지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벌어졌다. 대학 또는 학생 간의 경쟁이 전(全) 지구적으로 벌어지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3불’과 같은 규제는 무의미하다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됐지만, 정부는 ‘초·중등 교육 정상화’로 포장된 평등주의를 내세우며 이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대 김병국 교수(정치외교학)는 “글로벌 인재의 양성은 학교 간의 경쟁, 학생 간의 경쟁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현재의 수능 중심의 경쟁 체제는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경쟁을 통해 교사 사회의 분위기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우리나라는 학생들끼리만 경쟁하고 교사들 간의 경쟁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교사들이 10년에 한번씩 교사자격증을 갱신하는 제도의 도입까지 추진 중이지만, 우리는 교사면허를 한번 따면 평생 유효하다. 그는 내년 전면실시 예정인 교원평가제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평가결과를 단순한 참고자료로 쓰겠다고 했지만 인사·승급에 실질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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