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엔 신인왕이라는 제도가 있다. 특히 프로스포츠라면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골프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신인왕 제도가 있어 프로에 입문한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신인왕을 향해 경주하게 된다. 혹자는 이 신인왕을 일컬어 최우수선수상(MVP)보다 오히려 더 값진 봉우리라고 한다. 그것은 아마도 신인왕이라는 상이 평생 한 번 밖에 받을 수 없는 상으로서 데뷔 첫 해에 받질 못하면 영영 받을 수 없고, 받았다해도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유일무이한 봉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교사에게도 신인왕제도가 있어 나더러 심사위원을 맡으라고 한다면 나는 촌지수수여부를 제1의 기준으로 삼을 것 같다. 사실 촌지에 관한한 교직 첫 해부터 다소 결벽증에 가깝다할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출발해야 한다. 한 발 두 발 일단 디디게 되면 어느 순간 몸의 전부가 딸려 들어가 어느 시점부터는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늪이 된다. 모든 유혹이 그렇듯 촌지도 처음 한 번이 어렵지 일단 한 번 맛을 보면 이내 고도의 자기합리화가 일어날 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따라서 촌지에 관한한 시작은 반이 아니라 전부다.
"이번 딱 한 번만 받고, 앞으론 받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마치 꿀단지를 열어서 딱 한 번만 찍어먹고 다시는 먹지 않겠다는 ''불곰''의 다짐이나 새로 산 담배를 딱 한 대만 빼서 피우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겠다는 30년 골초의 장담만큼이나 무모한 것이다. 그러므로 촌지는 받기 전에 피할 대상이지 받고 나서 극복할 대상이 아니다.
촌지는 정말 피하기 어려운 유혹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초의 유혹을 ''슬기롭게'' 피한 교사는 그 이후의 유혹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다.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교사는 유혹을 힘들게 피할 필요도 없다. 일정부분 유혹이 알아서 피해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년초 어느 담임이 촌지를 거절하였다고 하자. 그 ''속보''는 당일 즉시 전용선을 타고 알만한 학부모들에게 모두 접수된다. 이 따끈따끈한 정보에 따라 학부모들은 담임과의 접속방식을 즉각 수정하여, 소위 ''봉투''를 마련한 학부모라면 이미 봉투를 비워 꽃집에 가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다. 정보는 꽃집을 지나 국경을 넘는다. 다른 반 학부모들은 물론 관리자인 학교장, 교감의 귀에도 속속 들어가게 되는데 연어알은 그렇게 터진다. 따라서 대가 곧은 학교에 있는 그대는 반드시 촌지를 받아 부임 첫 해부터 확실히 찍혀라. 터진 연어알을 그렇게 들고 서있으라.
자,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데 얼마나 걸릴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전용선엔 굳이 ADSL이나 메가패스가 아니어도 촌지 전용선이 있다. 장담하는데 빠르면 하루도 안걸린다. 따라서 촌지를 안 받는 교사보다 촌지를 받는 교사가 어떤 의미에선 훨씬 더 용감하고 심지가 ''곧은(?)'' 부분이 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촌지를 거절하는 데에도 룰이 있고 격식이 있다는 점이다. 거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촌지를 받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촌지를 투박하게 거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첫 번째 촌지공습은 약 8년전, 1997년 5월에 있었다. 교무실 안, 당시 나는 그야말로 ''추하게'' 촌지를 거절하고 있었다. 학부모는 내 양복주머니에 돈봉투를 마구 우겨넣으려 했고 나는 얼굴이 벌개진 채 이를 저지하느라 거의 필사적인 힘을 쏟고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선생님들은 그 광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촌스럽게'' 촌지를 거절하고 나면 대개 교사와 학부모간의 거리는 십중팔구 멀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실(失)이 되는부분이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촌지의 유혹이지 학부모-교사의 긴밀한 관계는 아니다. 아무튼 그 순간 난 도덕성을 방어한답시고 학부모를 수치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날개 잃은 천사라고나 할까? 아마 하나님도 섣불리 칭찬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그러므로 촌지의 공습을 받으면 절대로 화들짝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라. 일단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꼭 쥔 채 이렇게 말해보라. 천냥 빚을 지는 것도 ''말''이고, 천냥 빚을 갚는 것도 ''말''이다.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마음만 받고 나중 졸업식 때 나머지를 받겠습니다. 지금 주시면 뇌물이 되지만 그 때 주시면 사례가 됩니다. 어차피 제 것이니 잘 간직하셨다가 졸업식 때 잊지 말고 가져오십시오."
이처럼 촌지를 거절하지 않고 미루게 되면 아무리 ''꼭''자를 붙여도 촌지는 알아서 증발한다. 촌지의 본질을 고려하면 사실 증발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혹 1,2 년 후 졸업식까지 살아남은 촌지라면 기꺼이 받아 불우이웃돕기에 보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까지 졸업식까지 살아남아 내 호주머니에 들어온 촌지를 본 적이 없다. 대개 졸업식까지 가면 과거의 촌지들은 대개 자그마한 선물이나 편지, 혹은 꽃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그렇게 ''미루어'' 거절한 촌지는 학부모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눈 앞의 순간적 이익보다는 자신에게 오래가는 항구적인 이익을 택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촌지를 안 받는 것은 진정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길이다. 촌지없이 경제적으로 살아가노라면 얼마안가 생활의 규모를 알게 되고, 금전적 도덕성까지 얻게 된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다.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교사의 권위라고 여겨주니, 그 알은 또다시 꿩을 낳는 셈이다. 자, 달걀후라이를 들이킬 것인가, 아님 황금알을 품을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부임 첫 해, 일 년을 ''무사히'' 넘긴 다음 학년말 ''자가상장 1호''를 만들어 써붙여보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어쩌면 우리 자신일수도 있다.
<참고로 외대부속외고도 촌지없는 학교입니다.>
교육단상
교사 이경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