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상에는 [영화등급제, 예방기구인가 유인기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게재됨
얼마전 나는 헐리우드 SF 영화를 관람했다. 만 15세 관람가이고 주말이라 그런지 유난히 가족 관람객이 많았다. 내 옆에도 어떤 가족이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원하지 않는 선물''로 영화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전라의 두 남녀가 등장하면서 영화관은 어느 덧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과연 이 많은 가족들은 저 걸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그것이 더 궁금해졌다. 객석 여기저기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군의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떴고 내 옆의 가족도 결국 손붙들고 나갔다. 난 가족과 함께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텅 빈 그들의 자리를 바라보며 난 2년 전에 보았던 한 스페인 영화를 떠올렸다.
지난 2001년 10월에 단체관람한 만 15세 관람가 ''마리포*''가 바로 그 영화였다. 그 때도 민망한 장면 때문에 어둠 속에서 ''머리를 감싸쥔'' 과거가 있다. 극장측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담당자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알아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극장''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핵심은 영상위요 영상위의 ''구조''이다. 난 의문이다. 현재의 영상위에 소위 평균인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말이다. 만일 그 속에 교사나 학부모가 있었다면 과연 전라의 행위장면을 가족관람객이나 15세의 아이들에게 소화하도록 허용했을까? 영화의 기법과 작품성이라면 당연 영화인의 몫이다. 또 이미 영화제가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폭력, 마약, 섹* 같은 청소년 유해, 가족 유해 장면이다.
따라서 영상물등급위원회는 평균인의 도덕과 가족윤리, 그리고 청소년보호 등의 가치를 대변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영상위는 예방기구가 아니라 오히려 유인기구다. 16세(만15세) 자녀에게 최소 19세(만 18세) 장면을 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책임은 영상위에게만 있지 않다. 사실 ''우리''의 책무가 더 크다. 돈내고 ''변''을 당하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얌전한 바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심한지'' 아느냐고, 또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며 되려 쏘아붙이는 경우가 있다. 글쎄 난 모르겠다. 폭력, 마약, 섹*가‘그 정도''의 일에 불과한 지를 모르겠다. 특히 "심각하니까 말하지 말라"는 무책임한 순환논리는 더더욱 그렇다.
교사 이경근
2003년 7월 21일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