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영어국문학과를 만들자. 기존의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를 대체하자는 말이 아니라 영어국문학과를 별도로 추가하자는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영어국문학''이란 영어로 국문학을 접근한다는 발상이다.
이제 우리도 영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릴 때가 되었다. 서양에 존 로크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정약용이 있었고, 그들에게 히포크라테스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허균이나 이제마가 있었다. 그들의 플라톤은 우리의 이황이었고 우리의 이이는 그들의 아리스토텔레스 아니었을까. 우리의 고전은 세계의 고전이 될 만큼 고유성과 독창성이 충분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그저 국수주의내지는 저급한 민족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한국의 유산은 세계의 유산이요, 한국의 자산은 세계의 자산이다. 문화다원주의 시대라면 이제 우리도 우리 것을 내어놓을 때가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내 대형서점에 가보라. 광화문의 K문고 한 켠에 가면 이미 영어국문학 작품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
학교 영어교육도 그렇다. 영어전용존도 좋고 영어특구도 좋다고 하자. 하지만 우리의 딜레마는 다른데 있다. 힘들게 영어 배워 가지고 외국에 나가 한젤 에게 한젤을 말하고 그레텔에게 그레텔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허구헌 날 날씨나 말하고 레스토랑 예절만 익힐 수는 없다. 정작 그들이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것은 김치요 장화홍련이요 이순신이지 신데렐라나 콩나무의 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것을 영어로 배워본 적이 거의 없고 따라서 우리의 것을 영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남의 말로 남의 것만 배운다면 한국인도 될 리 없고 세계인도 될 수 없다. 디즈니를 보라. 그들의 관심이 무엇인가. 그들의 호기심은 중국의 뮬란이요, 중동의 알라딘이며, 올여름엔 신밧드이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들이 남의 것을 찾는다고 생각하는가? 소재의 신선함 때문이다. 자기 나라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어느 여름 ''무적함대 이순신''이 전세계에 동시 개봉될 그 날을 꿈꾸자.
이제 교육부를 포함한 관계당국은 우리의 유산이 세계의 유산, 세계의 자산임을 환기해야 한다. 어차피 배워야 할 영어라면 우리 것부터 영어로 배우자. 그것이 비교우위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선 우리 고전을 영어로 전담 번역할 국가번역센터를 신설, 우리 고전을 영어로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한편 대학에는 영어국문학과를 신설하자. 그 결과물인 우리 고전의 영어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자. 시내 대형서점마다 ''한국고전 영어전용관''이 마련될 즈음이 비로소 우리가 남을 알 준비가 되어 있을 때이다.
우리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남의 것인 전부인 이상 영어는 더 이상 세계어가 아니라 지배어일 뿐이고, 우리는 영어의 시장일 뿐이다.
교사 이경근
2003년 7월 8일 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