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金九) 선생의 글에 ‘나의 소원’이라는 글이 있다. 선생의 자전(自傳) ‘백범일지(白凡逸志)’ 뒤에 부록처럼 실어놓은 글이다. ‘나의 소원’은 형식상으론 ‘백범일지’의 부록 모양이지만, 내용상으론 선생의 생각과 뜻을 한데 뭉쳐놓은 ‘백범일지’의 결론이자 백미(白眉)라고 할 만한 글이다. 선생 스스로 ‘백범일지’ 출간사에서 “‘나의 소원’은 우리 민족 철학의 대강령을 적어본 것이니 동포 여러분은 주의하여 읽어주셔서 저마다의 민족 철학을 세우는 데 참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첫 문장부터가 뭉클하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마흔넷에 조국을 등진 후 스물여섯 해 동안 중국 대륙의 서리를 깔고 바람을 덮으며 조국 광복에 피와 눈물을 쏟다가 일흔에 조국 땅에 다시 발을 디딘 선생의 목소리는 이렇게 쟁쟁했다.
선생은 그 다음 독립 대한의 나아갈 길을 밝혔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富强)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충족히 할 만하면 되고, 나라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60년 전 그 아득한 시절 나이 일흔둘 노인의 꿈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선진적(先進的) 포부다. 선생은 19세기적 낡은 ‘강성대국(强盛大國)’을 배격했다. 새로운 선진문화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력과 경제력만 돌출(突出)한 ‘하드웨어(hardware) 대국’이 아니라 선진문화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소프트웨어(software) 대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진문화 국가의 으뜸 지표(指標)는 군사력도 GDP도 아니다. 그때나 이제나 바로 교육이다. 세계 젊은이들이 자기실현의 꿈을 품고서 배우고자 밀려드는 나라가 선진문화대국이다. 요즘 세계 젊은이들이 옥스퍼드·케임브리지로, 하버드·프린스턴·MIT·시카고로 밀려들 듯이 말이다. 지금 중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우리의 초등·중등·고등학교 교육을 받겠다고 밀려오고 있고, 일본·호주·인도·독일·스페인의 젊은이가 한국의 대학에서 꿈을 펴겠다며 줄지어 찾아 들고 있다면, 우리는 선생이 그렸던 선진 문화대국의 길을 확실하게 가고 있는 것이다. 10년 15년 후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는 길을 밟고 있기만 해도 좋다.
오늘 우리 사정은 어떤가. 아홉 살짜리 코흘리개부터 열다섯 청소년, 스무 살 젊은이들까지 교육 망명(亡命) 대열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 한국의 교육 난민촌(難民村)이 들어서고, 한 해 수십억 달러를 바다 건너 학교에 월사금으로 바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이 정권은 행정복합도시라는 ‘유령(幽靈)도시’를 세우겠다며 45조6000억원의 정부 돈과 민간의 돈을 끌어 모아 허허벌판에 시멘트와 자갈을 퍼붓고 있다.
포스텍(옛 포항공대)은 개교 20년 만에 아시아에서 손꼽는 대학이 됐다. 며칠 전 어느 평가에선 한국 최고의 대학으로 뽑히기도 했다. 거기 들어간 돈이 20년 동안 모두 합해 3870억원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포스텍 같은 대학 117개를 세울 돈이 정부청사와 아파트를 짓는 시루 구멍으로 철철 새나가고 있다. 그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은지 이 정권은 19개의 과학고와 29개의 외국어고도 숨통을 끊어놓겠다고 나섰다. 그곳 재학생들까지 교육 망명 대열에 합류(合流)시키고 말겠다는 것이다. 교육 초토화(焦土化)작전이다.
백범은 ‘나의 소원’ 맨 마지막에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으나, 이제 일흔이 넘어, 천하(天下)의 교육자들이 한번 마음을 크게 고쳐먹기만을 빌고 있다.” 이 정권은 대통령부터 무슨 별난 일을 벌일 때면 항상 효창운동장 곁 백범기념관을 선생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사용해왔다. 바로 그 정권이 50년 100년 앞을 내다봤던 백범의 문화대국의 꿈을 교육 망국(亡國)이란 망치로 산산조각 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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